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리비에 메시앙 (문단 편집) == 생애 == 메시앙은 1908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영문학자, 어머니는 시인으로 활동하였고, 이에 영향을 받아 문학에도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음악에 재능이 있었고, 부모 역시 그의 음악공부에 지원을 아끼지 않아 10살 때부터 정식 음악교육을 받았고, 1919년 11살의 나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다. 음악원에서도 그의 재능은 빛을 발하였는데, 15세에 화성학에서 차석, 16세에 대위법, 푸가 수석, 17세에 피아노 합주 수석, 18세에 음악사 수석, 19세에 오르간 연주 수석, 20세에 작곡 부문 수석을 잇달아 차지하면서 [[엄친아]]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훗날 그의 제자인 [[피에르 불레즈]]도 스승 메시앙에 버금가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곳에서 그는 스승인 [[폴 뒤카]]를 처음 만나고, 그의 권유로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음악, 고대 그리스 음악에 관심을 가져 기존 서양 음악의 정형화된 리듬, 음정, 음색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음향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때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피아노를 위한 8개의 전주곡'과 처음으로 공연된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 '제물'에서는 이미 그의 개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한편, 메시앙은 오르간 연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데, 처음 [[파이프오르간]] 연주법을 한 시간 동안 교육받고 일주일 후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바흐]]의 오르간곡을 능숙하게 연주해 큰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1929년 파리 생트 트리니테(성삼위) 성당의 보조 연주자로 취임, 다음해 상임 연주자가 사망하자 바로 상임 연주자의 자리에 오르고, '''6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킨다. 1932년, 그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클레르 델보와 결혼하고, 그녀를 위해 '미(Mi)를 위한 시'를 작곡한다. 또 1937년 아들 파스칼까지 태어나서 기쁨의 연속이었다. 다만 델보는 수술 후 기억을 잃고 나머지 생을 정신병원 등에서 보내야 했기 때문에 그 결혼은 결과적으로 비극이 되어버렸다. 1959년 그녀가 죽은 후, 1961년 메시앙은 피아니스트 이본 로리오와 결혼했다. 그 결혼은 성공적이어서 메시앙의 사망 때까지 그들은 함께였다. 한편, 그는 '젊은 프랑스'라는 조직을 구성, 당시 프랑스 음악계를 비판하면서 진보적인 음악을 추구했다. 한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군의 포로로 포로 수용소에서 생활한 경험도 있는데, 이 때 작곡된 작품이 그의 명곡으로 꼽히는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Quatuor pour la fin du temps)》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메시앙은 모교인 파리 음악원에 교수로 취임 작곡활동과 교육활동에 모두 매진한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근대음악을 과감히 수업 과정에 채택, 현대 음악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때 당시 그를 사사하던 제자들로는 [[피에르 불레즈]],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이안니스 크세나키스]] 등이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제자들이 주도한 현대음악에서 메시앙은 어느정도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제자들이 주도한 총렬주의[*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확대, 박자, 화성 등에 이르기까지 활용한 음악이다. ~~어쨌든 일반인 귀에는 소음.~~]를 처음에는 주도했지만 후에는 제자 불레즈, 슈토크하우젠을 가리켜 '작은 악마들'로 칭하면서 비판, 상당히 '새의 카탈로그', '투랑갈릴라 교향곡', '이국의 새들' 등 자연적이고 동양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후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메시앙은 신비주의적, 종교적 작품을 주로 작곡하기 시작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변용', 오페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피안의 빛' 등 이당시의 작품들은 모두 명상적인 느낌이 강하다. 83세까지 장수한 메시앙은 1992년 사망한다. 살아 생전 평판이 매우 괜찮았던 사람이다. 아마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종교와 밀접했던 생활 때문이었는지도. 괴팍한 음악가로 유명한 [[루트비히 판 베토벤|베토벤]]이나, [[괴짜]] [[천재]] 음악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모차르트]]와는 정반대의 사람. 가히 메시앙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는 [[정명훈(지휘자)|정명훈]] 지휘자도 살면서 만나본 수 많은 음악가 중에 메시앙이 가장 인간적으로 성인군자다운 사람이였다고 회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